민11:1-9
1= “백성이 여호와의 들으시기에 악한 말로 원망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진노하사”
“악한 말로 원망했다.”고 하죠. 하나님께서 들으시기에 민망할 정도였습니다. 이런 불평을 들으신 하나님께서 진노하시고, 불로 일부를 태우셨는데요. 하나님의 경고였죠. 원망하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닌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원망하였을까요?
1> 섞여 사는 무리들 때문이었습니다.
4= “이스라엘 중에 섞여 사는 무리가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가로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꼬”
여기 섞여 사는 무리는 어떤 사람들이죠? 애굽에서 나올 때 함께 나왔던 이방인들입니다. 이들이 불평하고, 탐욕을 부렸는데 이 사람들에게는 믿음이 없었죠. 이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따라와서 옆에 있으니까 이스라엘 백성들도 덩달아 불평하는 거죠.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가로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꼬” 여러분, 이처럼 주위에 어떤 사람이 있는가?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과 어울리는가 하는 것은 중요하죠. 사람들은 어울리는 사람에게 영향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기적들을 체험했고, 홍해를 육지처럼 건너고, 구름기둥, 불기둥의 인도를 받았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 은혜로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은혜를 생각하지 않으니까 원망이 나오는 것입니다.
3> 옛날이 그리워하니 원망이 나오는 것입니다.
5=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외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애굽에 있을 때는 여러 가지를 먹었는데 지금 광야에는 그런 것들이 없다는 겁니다. 애굽에서 고생하던 것은 생각하지 않고, 애굽에서 먹었던 것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애굽에 있을 때가 좋았습니까? 좋을 것이 없죠. 그런데 그 때가 좋았다고 하죠. 거기가 좋았다고 불평하면서 울고 있습니다.
10= “백성의 온 가족들이 각기 장막 문에서 우는 것을 모세가 들으니라. 이러므로 여호와의 진노가 심히 크고 모세도 기뻐하지 아니하여”
그래서 모세가 기도를 하죠.
11= “주께서 어찌하여 종을 괴롭게 하시나이까 어찌하여 나로 주의 목전에 은혜를 입게 아니하시고 이 모든 백성을 내게 맡기사 나로 그 짐을 지게 하시나이까”
12= “이 모든 백성을 내가 잉태하였나이까 내가 어찌 그들을 생산하였기에 주께서 나더러 양육하는 아비가 젖 먹는 아이를 품듯 그들을 품에 품고 주께서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가라 하시나이까”
15= “주께서 내게 이같이 행하실찐대 구하옵나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나로 나의 곤고함을 보지 않게 하옵소서.”
모세가 낙심하고 있습니다. 엘리야가 로뎀 나무 아래서 죽고 싶다고 말한 것처럼 모세도 자신을 죽여 달라고 합니다. 이렇게 탄식하며 기도하는데요. 왜 이렇게 탄식하고, 낙심했을까요? 모세의 기도를 보면서 모세가 낙심하는 원인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첫째, 너무 자기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나”라는 단어가 너무 많이 나오죠. “백성을 내게 맡기사”, “나로 그 짐을 지게”, “내가 잉태하였나이까”, “내가 어찌 생산하였기에”, “나더러 양육하는”, “내가 어디서 고기를 얻습니까”, “나 혼자는 질 수 없나이다.” 계속 “나”를 말하고 있죠. 그런데 무슨 일이든 자기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힘을 얻고, 사명을 감당하는데 모세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러면 누구나 낙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 사명을 망각하고 있습니다.
15= “주께서 내게 이같이 행하실찐대 구하옵나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나로 나의 곤고함을 보지 않게 하옵소서.”
죽여 달라고 하는 것이 옳은 것입니까?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으로 이끌라는 사명을 주시고, 불러주셨는데 죽여 달라는 것이 말이 되는 것입니까? 욘4장을 보면 요나도 죽여 달라고 하죠. 왕상19장에서 엘리야도 죽여 달라고 하고, 본문에서 모세도 죽여 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분들이 다 믿음이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니죠.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이런 말을 했겠어요? 그러나 그래도 이런 소리는 하는 것은 아니죠.
모세의 이런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응답하셨습니까?
1> 70명의 장로들을 붙여주셨습니다.
16=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노인 중 백성의 장로와 유사 되는 줄을 네가 아는 자 칠십 인을 모아 데리고 회막 내 앞에 이르러 거기서 너와 함께 서게 하라.”
출24장을 보면 시내산에 올라갈 때 백성 중에서 70 장로를 세운 적이 있죠. 본문에서도 70인을 따로 세우라고 합니다. 왜 그러죠? 모세를 도울 사람들을 세우라는 겁니다. 모세의 짐을 함께 져줄 사람들이 필요한 거죠.
그것도 그냥 70인이 아닙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이 필요한 거죠. 그래서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셨습니다. 인간적인 생각만 하는 사람이 옆에서 돕는다고 하면 충돌이 오죠. 은혜를 받은 사람, 성령을 받은 사람이 도와야죠.
2> 고기를 한없이 먹도록 주셨습니다.
18-20=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실 것이라. 하루나 이틀이나 닷새나 열흘이나 이십일만 먹을 뿐 아니라. 코에서 넘쳐서 싫어하기까지 일개월간을 먹게 하시리니”
이런 기적이 어디 있습니까? 200만 명이 한 달을 코에서 냄새가 나도록, 아주 질리도록 고기를 먹게 하시겠다는 건데요. 하나님의 능력은 이렇게 무한하신 것입니다.
3> 탐욕을 부린 자들을 징계하셨습니다.
33-34= “여호와께서 백성에게 대하여 진노하사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으므로 그 곳 이름을 기브롯 핫다아와라 칭하였으니 탐욕을 낸 백성을 거기 장사함이었더라.”
여러분, 욕심을 부리지 말고 살아야 합니다. 탐욕을 부리고, 불평하고, 원망하다가 험한 꼴을 당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자신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사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