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1:1-4
민수기는 시내산에서 모압 광야에 도착할 때까지의 여정을 기록하고 있는데요. 민1장에는 인구조사에 대한 내용이 있습니다.
그런데 인구를 왜 조사하라고 하셨을까요?
1> 뿌리를 알려주는 목적이 있습니다.
자신이 속한 곳이 어디인가를 알아야죠. 출생을 알고, 가족공동체를 이루라는 것입니다. 아무 곳에서, 아무렇게 살면 안 되는 거죠.
2> 단합된 힘과 질서를 위해서입니다.
민1장에서 반복되는 말이 있는데요. “20세 이상 싸움에 나갈만한 자”라는 말입니다. 14번 나오는데요. 물론 전쟁이 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이기게 하실 것입니다. 그래야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죠. 그렇다고 손 놓고 있으면 안 되고, 전쟁을 준비하고, 군사도 필요한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축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구를 조사해보니 몇 명입니까? 20세 이상 장정이 603,550명입니다. 야곱이 애굽으로 갔을 때 70명이었지만 하나님의 축복으로 백성이 603,550명으로 많아진 겁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진 거죠.
특히 인구가 가장 많은 지파가 어디입니까? 유다지파인데요. 유다지파는 76,400명입니다. 왜 유다지파가 이렇게 번성하였을까요? 창48:8-12절에서 야곱이 축복한 대로 된 거죠. 야곱의 예언대로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것입니다. 아무튼 20세 이상 장정이 60만이 넘고, 여기에 여성, 노인, 아이, 외국인까지 포함하면 200만이 넘는다고 추산하는데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4> 레위인을 구별하셨습니다.
왜 레위인은 구별하였을까요? 하나님의 일을 전담하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47= “오직 레위인은 그 조상의 지파대로 그 계수에 들지 아니하였으니”
49= “레위지파만은 너는 계수치 말며 그들을 이스라엘 자손 계수 중에 넣지 말고”
50= “그들로 증거막과 그 모든 기구와 그 모든 부속품을 관리하게 하라. 그들은 그 장막과 그 모든 기구를 운반하며 거기서 봉사하며 장막 사면에 진을 칠찌며”
51= “장막을 운반할 때에는 레위인이 그것을 걷고, 장막을 세울 때에는 레위인이 그것을 세울 것이요, 외인이 가까이 오면 죽일찌며”
53= “레위인은 증거막 사면에 진을 쳐서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에게 진노가 임하지 않게 할 것이라. 레위인은 증거막에 대한 책임을 지킬찌니라 하셨음이라.”
이렇게 구별받은 레위인들은 하나님과 관계된 일을 위해 구별되었죠. 그래서 레위인들은 성막주변에서 살았습니다. 이처럼 “만인제사주의”를 믿는 우리는 모든 성도들이 다 레위인처럼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교회중심, 하나님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신자들을 크리스천이라고 하죠. “Christian”이라는 단어는 “Christ”에 “ian”이 붙어서 된 단어인데요. “ian”은 “belong to”라는 단어입니다. 라틴어에서 온 말이죠. 그래서 크리스천이라는 말은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이라는 말이죠.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에게 속한 사람으로, 구별된 사람처럼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옛날 유명한 알렉산더 황제 밑에 황제와 이름이 같은 알렉산더라는 병사가 있었는데 그 병사는 황제의 이름에 걸맞지 않게 방탕하고, 타락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소문이 황제에게까지 알려지자 황제가 그를 직접 찾아가서 물었습니다. “자네 이름이 알렉산더인가?” “네, 그렇습니다.” 그러자 황제는 책망하면서 “이름을 바꾸든지, 생활태도를 바꾸든지 하라.”고 명령했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도 그렇죠. 크리스천이라고 하지를 말든지, 아니면 크리스천처럼 살든지 선택을 해야 합니다.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그들을 부르는 호칭을 여러 가지로 사용했는데요. “자매, 일꾼, 보호자, 동역자, 사랑하는 자, 권속, 함께 갇힌 자, 형제, 성도”라는 호칭을 사용했죠. 이 호칭들이 얼마나 좋습니까? 그렇다면 이런 호칭답게 살아야겠죠.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암탉이 알을 품는데 독수리 알 하나가 어쩌다 들어갔답니다. 그런데 독수리 알을 달걀로 착각한 암탉은 알들을 부화시키고, 그 중에 부화가 된 독수리 새끼도 자기 새끼인줄 알고 키웠습니다. 한편 독수리도 자기가 닭인 줄 알고 자랐는데요. 그런데 어느 날 새끼 독수리가 하늘을 날아가는 진짜 독수리를 보았습니다. 독수리를 보며 부러운 생각이 들었는데요. “나도 저렇게 날 수 있을까?”라고 중얼거리자 다른 닭들이 “야! 저기 하늘을 나는 새는 독수리이고, 너는 닭이야. 덩치만 크고, 못생긴 닭이지. 너는 하늘을 날 수 없어!”라고 하였습니다. 닭들의 핀잔을 들은 새끼 독수리는 결국 자기가 평생 닭인 줄만 알고 살면서 하늘을 날지도 못하고, 달걀도 하나 낳지 못하고 살다가 죽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성도들은 닭이 아니라, 하늘을 나는 독수리와 같은 존재입니다. 믿음의 날개, 기도의 날개를 펴고 살아야죠. 간혹 떨어진다고 할지라도 성도들은 망하거나 죽지 않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자녀로서 당당하게 살고, 구별된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