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34:1-2, 13-15
민33장에서는 가나안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씀하셨고, 민34장에서는 가나안의 경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가나안을 정복한 상태입니까? 아니죠. 아직 들어가지 않았죠. 정복한 상태가 아닙니다. 그런데 마치 가나안을 정복한 것처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가나안을 이스라엘에게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본장이 주는 몇 가지 교훈을 생각해봅니다.
1> 하나님께서 주시는 대로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본장에서 말씀하시는 가나안 땅의 경계는 실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과는 다릅니다.
창15:18=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워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그런데 본장에서 말씀하는 땅은 더 작습니다. 만약에 누군가가 창15:18절을 기억하고 있다면 “하나님, 왜 약속하신 것과 다릅니까?”라고 할 수 있었겠죠. 그러나 지금은 이 정도가 적당하다는 거죠. 하나님께서 약속을 잊어버리고 어기는 것은 아니죠. 나중에 다윗 때에 와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이루셨습니다.
삼하8:3-4= “르홉의 아들 소바 왕 하닷에셀이 자기 권세를 회복하려고 유브라데강으로 갈 때에 다윗이 저를 쳐서 그 마병 일천 칠백과 보병 이만을 사로잡고 병거 일백승의 말만 남기고 그 외의 병거의 말은 다 발의 힘줄을 끊었더니”
삼하8:6= “아람 사람이 다윗의 종이 되어 조공을 바치니라.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
다윗을 통하여 유브라데까지 정복하게 하셨죠. 이처럼 하나님의 약속은 변함이 없습니다. 다만 때가 중요한 거죠. 그러므로 우리가 원하는 대로 안 되었다고 실망해서는 안 되죠. 때가 되어야 약속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경계 안에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본장을 보면 가나안의 동서남북 경계를 말씀하시는데요. 경계는 하나님의 보호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바울이 자주 말하는 것이 있죠.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관용구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살았다는 거죠. 그리스도를 떠나서 살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리스도를 떠나면 죽음이죠.
오늘 우리도 그렇습니다. 말씀을 떠나고, 교회를 떠나고, 예수님을 떠나 세상으로 나가면 그것은 죽음의 길로 나가는 것입니다. 노아의 식구들이 홍수 때 어디에서 살았습니까? 방주 안에서 살았죠. 방주를 떠난다는 것은 죽음의 길로 나가는 거죠.
칼빈이 말하기를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의 울타리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고 했습니다. 울타리를 벗어나면 불행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고, 양이 울타리를 벗어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죽음이죠. 위험한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의 울타리 안에서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경계 안에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3> 지도자를 잘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18= “너희는 또 기업의 땅을 나누기 위하여 매 지파에 한 족장씩 택하라.”
땅을 분배하기 위해서 지파마다 대표자를 선정하라고 하죠. 물론 그냥 지나갈 수 있는 대목입니다. 사람의 이름이 뭐 그렇게 중요하겠어요? 그러나 한 가지 생각해볼 것이 있는데요. 가나안을 정탐할 때의 사람들과 비교해보는 겁니다.
민13장을 보면 정탐꾼들의 이름이 나오는데요. 그 중에 몇 사람을 보면 이렇습니다. 삼무아(유명하다), 사밧(심판자), 갓다(행운), 스둘(숨겨진 자), 이런 이름들이죠.
그런데 본문에 나오는 사람들을 보면 갈렙(공격자), 스므엘(하나님께서 들으심), 엘리닷(하나님께서 사랑하심), 북기(하나님께서 인정하심), 한니엘(하나님은 은혜), 그므엘(하나님께서 기르시는 자), 엘리사반(하나님께서 보호하시는 자), 발디엘(하나님은 나의 구원), 아히웃(연합하는 친구), 브다헬(하나님께서 건지시는 자)입니다.
민13장의 부정적인 보고를 했던 정탐꾼들과 민34장의 대표자들과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정탐꾼들의 이름은 사람중심이라면 민34장의 대표자들의 이름은 하나님중심이죠. 다 하나님과 연관된 이름을 가졌습니다. 이들의 삶을 다 알려주지는 않지만 뉘앙스를 보면 뭔가 다르지 않습니까?
여러분, 하나님을 떠나면 안 되죠. 하나님중심으로 살아야 복을 받습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언제나 인민을 앞세우고, 사람을 중시한다고 하지만 사람을 중심으로 하면 나라는 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중심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지도자를 세울 때도 얼마나 믿음이 있는가? 얼마나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가? 이런 것을 봐야 합니다. 돈이 얼마나 많은가? 집안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경험이 얼마나 많은가? 이런 것만 보면 안 됩니다. 얼마나 믿음이 좋은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 헌신적인가? 얼마나 겸손하고, 잘 협력하는가? 이런 것을 보고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은혜롭고, 평안해야 합니다. 교회가 시끄럽고, 싸우고, 그러면 성도들이 복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홉 지파 반만 가나안에서 땅을 분배받는데요. 두 지파 반은 요단 동편에서 땅을 받았죠. 그래서 이들은 가나안에서 땅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경계를 떠나 살아서 결과는 좋지 않았죠. 오늘도 하나님의 경계, 하나님의 울타리 안에서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