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ober 11, 2024

민22:21-35

민22장을 통하여 주시는 교훈이 있습니다.

1>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발람이 발락에게로 가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죠. 그런데 발람이 돈에 눈이 어두워 미련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가라고 하셨는데요. 하나님의 뜻이 아닌데 자꾸 우겨서 자기의 뜻을 관철시키면 결국은 그것이 재앙으로 돌아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2> 세상의 유혹에 타협하지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

발락이 발람에게 이스라엘을 저주하라고 귀족들과 예물로 유혹을 하는데 안 넘어오니까 더 많은 예물과 더 높은 귀족들을 보내어 유혹하죠. 돈에 미련이 있는 발람이 넘어가죠. 분명히 안 되는 일에 “갈까요? 말까요?” 자꾸 묻는 것은 그만큼 미련이 있다는 거죠. 세상의 유혹에 미련을 가지면 안 되죠. 단호하게 “안 되는 것은 안 돼!” 끊어야 합니다. 미련을 가지면 넘어가는 것입니다.

3> 가면 안 되는 길은 가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22= “그가 행함을 인하여 하나님이 진노하심으로 여호와의 사자가 그를 막으려고 길에 서니라”

하나님께서 막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가서는 안 되는 길이라는 말씀이죠. 길을 한번 잘못 들면 큰일이 나게 되는 것입니다.

미국의 교도소에 수감된 한 사형수가 신문을 손에 들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신문의 머리기사는 “제22대 대통령 클리블랜드 취임”이었는데요. 간수가 사형수에게 “왜 우냐?”고 묻자 그가 말하기를 “클리블랜드와 나는 대학교 동창입니다. 어느 날 수업을 마치고 나오다가 우리는 교회의 종소리를 들었죠. 그때 클리블랜드는 ‘우리 교회에 가자’라고 했는데 나는 거절했죠. 결국 클리블랜드는 교회로, 나는 술집으로 향했죠. 그것이 우리의 운명을 갈라놓았습니다.”

가야할 곳과 가서는 안 되는 길을 어떻게 선택하느냐에 따라 대통령이 되기도, 사형수가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장자의 축복과 팥죽 한 그릇,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발람은 잘못된 길을 선택하죠. 하나님이 막으시는 길을 강행군합니다. 그러면 안 되죠.

4> 볼 것을 보지 못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발람은 길만 잘못 택한 것이 아니라 발람의 행동도 너무나 잘못되었습니다.

23= “나귀가 여호와의 사자가 칼을 빼어 손에 들고 길에 선 것을 보고 길에서 떠나 밭으로 들어간지라. 발람이 나귀를 길로 돌이키려고 채찍질하니”

25= “나귀가 여호와의 사자를 보고 몸을 담에 대고 발람의 발을 그 담에 비비어 상하게 하매 발람이 다시 채찍질하니”

27= “나귀가 여호와의 사자를 보고 발람의 밑에 엎드리니 발람이 노하여 자기 지팡이로 나귀를 때리는지라.”

나귀도 하나님의 사자를 보고 있는데 발람은 보지 못하고 있죠. 나귀만도 못합니다. 나귀가 보는 것을 발람은 보지도 못하고, 나귀에게 신경질을 내며 채찍질을 합니다. 이렇게 탐욕에 눈이 어두우면 볼 것을 보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흔히 소는 고집이 센 짐승이라고 하죠. “황소같이 고집이 세다. 항소고집이다.”라고 하는데 나귀는 “우둔한 짐승의 대명사”로 불립니다. 그런데 발람은 우둔한 짐승만도 못하죠. 나귀가 보고 말을 하는데 발람은 깨닫지 못하죠.

28= “여호와께서 나귀 입을 여시니 발람에게 이르되 내가 네게 무엇을 하였기에 나를 이같이 세 번을 때리느뇨?”

29= “발람이 나귀에게 말하되 네가 나를 거역하는 연고니 내 손에 칼이 있었더면 곧 너를 죽였으리라.”

30= “나귀가 발람에게 이르되 나는 네가 오늘까지 네 일생에 타는 나귀가 아니냐? 내가 언제든지 네게 이같이 하는 행습이 있더냐? 가로되 없었느니라.”

발람은 나귀와 대화를 하면서도 깨닫지 못합니다. 얼마나 미련하면 나귀가 말을 해도 깨닫지를 못하겠어요?

31= “때에 여호와께서 발람의 눈을 밝히시매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칼을 빼어들고 길에 선 것을 보고, 머리를 숙이고 엎드리니”

사1: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시49:20=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이렇게 짐승보다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발람은 나귀만도 못하였습니다.

5> 잘못된 만남은 화를 초래한다는 것입니다.

발락과 발람의 만남은 잘못된 만남이죠. 하나님의 백성을 망하게 하려는 만남 아닙니까? 잘 될 수가 없죠. 성공할 수가 없는 만남입니다.

36= “발락이 발람의 온다함을 듣고 모압 변경의 끝 아르논 가에 있는 성읍까지 가서 그를 영접하고”

37= “발락이 발람에게 이르되 내가 특별히 보내어 그대를 부르지 아니하였느냐 그대가 어찌 내게 오지 아니하였느냐 내가 어찌 그대를 높여 존귀케 하지 못하겠느냐”

인간적으로 만나서 “우리 잘해보자!”라고 하지만 이 사람들의 만남은 잘못된 만남입니다.

40= “발락이 우양을 잡아 발람과 그와 함께한 귀족을 대접하였더라.”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는 만남은 아무리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해도 결과적으로는 축복이 될 수 없는 겁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바른 길을 가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