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4:1-12
룻기는 죽음으로 시작하여 생명으로 끝을 맺는데요. 나오미의 남편과 두 아들의 죽음으로 시작하고, 룻이 보아스를 만나 기업을 잇는 것으로 끝납니다. 절망으로 시작하여 소망으로 끝나죠. 불행으로 시작하여 축복으로 끝을 맺습니다. 이러한 룻기를 통하여 배우는 것이 많은데요.
도덕적인 면에서 두 가지를 가르쳐줍니다.
첫째, 룻의 효성입니다. 룻은 시어머니의 고통을 분담하고, 시어머니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였습니다. 홀로된 시어머니에게 효성을 다하여 모셨습니다.
둘째, 보아스의 인품입니다.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과부인 이방여인을 돌보는 보아스의 인품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신학적인 관점에서 배울 점도 많습니다.
첫째, 유대인의 국수주의를 지적합니다. 이방 여인 룻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 유대인들의 “Nationalism”의 잘못을 지적합니다. 하나님은 유대인만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도 역사의 주인공으로 쓰신다는 것을 보여주죠. 하나님은 유대인들만의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구속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윗의 족보에 이방여인이 들어가므로 이방인을 포함한 만민의 구세주로 메시야가 오실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유대인만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도 구원하는 구원의 보편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셋째, 고엘제도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자식을 얻지 못하면 친족 중에서 남편을 얻어 자식을 보고, 기업을 잇게 하는 제도가 “고엘제도”인데요. 룻이 보아스를 만나 결혼하므로 다윗 왕의 가문에 들어가는 사건을 룻기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룻이 어떻게 이런 복을 받았을까요?
1> 하나님을 믿기로 결심했기 때문입니다.
룻은 절망적인 처지에 빠졌지만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고 살았습니다.
룻1:16=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룻은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믿었습니다. 이처럼 오늘 우리도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믿어야 합니다. 룻은 “어머니의 하나님”으로 만족하지 않고, “나의 하나님”으로 믿기 위하여 베들레헴으로 따라온 것입니다. 조국과 친척을 버리고 왔죠. 우리도 세상을 살면서 이렇게 하나님을 믿게 된 것은 큰 축복입니다. 이런 기회를 주신 것은 대박이죠. 이런 기회를 놓치면 그것은 비극입니다.
이태리에서 어느 분이 복권에 당첨이 되었습니다. 6개월간 당첨자가 없자 당첨금이 6,600만 유로로 올랐습니다. 미화로 8천만 불이 넘었죠. 그런데 당첨된 분이 바쁘게 지나다가 깜빡 잊고 지급마감시한을 넘기고 말았다고 합니다. 날짜가 지난 다음에 갔는데 주겠습니까? 안 주죠. 충격으로 졸도하여 병원에 실려 가서 2시간 만에 깨어났는데요. 대박이 일장춘몽이 되고 말았죠.
그런데 여러분, 복권보다 더 좋은 행운과 축복이 있죠. 죽은 다음에 지옥에 가느냐? 천국에 가느냐? 이것보다 더 시급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을 기회는 정해져 있습니다. 믿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지옥에 떨어지면 기회는 다시는 없는 것입니다.
2> 보아스를 따르기로 결심했기 때문입니다.
룻은 시어머니를 섬기기 위해서 고생을 했는데요. 남의 밭에 가서 이삭을 주우므로 연명하였습니다. 그런데 믿는 룻을 하나님께서 버리시겠어요? 보아스를 만나게 하시고, 인생의 전환점을 만들어주셨습니다. 인생을 바꾸어주셨죠.
학자들 중에는 이렇게 룻의 인생을 바꾼 보아스를 예수님의 모형이라고도 해석합니다. 룻을 구하고, 가문을 일으킨 보아스처럼 예수님도 우리를 구하시고, 우리의 가문을 일으켜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사람은 그가 어떤 사람이든 죄용서를 받고, 구원을 받습니다. 인생이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예수님의 은혜입니다.
톨스토이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성자는 자신을 죄인의 괴수라고 생각하고, 나쁜 사람은 자신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고, 제일 악한 사람은 자신이 바르게 사는 사람이라고 여긴다고 하였습니다. 옳은 말이죠.
어느 심리학자는 인간의 모든 문제의 99퍼센트는 바로 죄의 문제라고 했습니다. 죄 때문에 모든 심리적인 문제가 발생한다는 거죠. 성경은 두말 할 필요가 없습니다. 모두가 다 죄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죄가 없는 사람이 없죠. 그러나 예수님의 피가 우리의 모든 죄를 해결해주시는 것입니다. 모든 믿는 자에게는 죄 사함의 은혜를 주십니다. 이것이 최고의 하나님의 은혜죠.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돌보십니다.
“샤르니”라는 사람이 나폴레옹에게 억울하게 밉게 보여서 감옥에 갇혔습니다. 오랜 세월이 흐르자 친구들은 물론, 가족들에게도 외면을 당했는데요. 그는 벽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아무도 나를 돌보지 않는다.” 그는 소망을 잃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감옥바닥의 돌 틈에서 새싹이 하나 올라왔습니다. 샤르니는 간수가 주는 물을 조금씩 남겨서 잎사귀에 주었는데 마침내 꽃봉오리가 생기더니
아름다운 꽃을 피우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먼저 썼던 글을 지우고 이렇게 썼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돌보신다.” 감옥바닥에 꽃이 피었다는 소문이 나자 소문이 조세핀 왕비의 귀에 들어갔습니다. 그 때 조세핀은 “꽃을 사랑하고, 꽃을 돌보는 사람은 결코 나쁜 사람이 될 수가 없다.”고 하며 황제에게 건의하자 결국 샤르니가 석방되었습니다.
한편 죄수의 돌봄으로 감옥의 바닥에서도 꽃도 피는데 하나님께서 돌보시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염려할 것이 없을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돌보심을 믿고, 오늘도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