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21:1-7
삿19장에서 한 레위인의 일탈행위로 시작하여 삿20장에서는 동족 간에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비극이죠. 11지파의 군사는 4만 명이상이 죽고, 베냐민지파는 남자 600명만 남고 전멸했습니다. 그런 다음에 미스바 총회로 모였는데 여기서 또 두 가지 잘못된 결의를 합니다.
첫째, 베냐민지파와 혼인을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1=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에서 맹세하여 이르기를 우리 중에 누구든지 딸을 베냐민 사람에게 아내로 주지 아니하리라 하였더라.”
이 말은 베냐민지파를 이방인처럼 여기겠다는 뜻이죠. 동족으로 여기지 않겠다는 말인데요. 이것은 좋지 않은 결정입니다.
둘째, 총회에 참석하지 않은 자들을 죽이기로 했습니다.
5= “이스라엘 자손이 가로되 이스라엘 온 지파 중에 총회와 함께하여 여호와 앞에 올라오지 아니한 자가 누구뇨 하니 이는 그들이 크게 맹세하기를 미스바에 와서 여호와 앞에 이르지 아니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라 하였음이라.”
이 두 가지 결의로 야베스 길르앗을 치는 또 다른 동족간의 전쟁이 벌어집니다. 총회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12,000명의 군사를 동원하여 동족을 진멸하는 장면을 보면 너무나 감정적이고, 지나친 결정이었죠. 끓어오르는 분노를 절제하지 못하고, 동족끼리 전쟁을 하여 어떻게 됩니까?
2-3= “백성이 벧엘에 이르러 거기서 저녁까지 하나님 앞에 앉아서 대성통곡하여 가로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오늘날 이스라엘 중에 어찌하여 한 지파가 이즈러졌나이까 하더니”
베냐민지파가 600명만 남고 다 죽었잖아요. 한 지파가 없어지게 되자 늦게 깨닫고 통곡합니다. 그래서 베냐민을 일으켜야 하는데 또 더 큰 실수를 하였습니다. 무슨 결정을 하였습니까?
1=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에서 맹세하여 이르기를 우리 중에 누구든지 딸을 베냐민 사람에게 아내로 주지 아니하리라 하였더라.”
남자밖에 없는 베냐민지파에 딸들을 주지 않기로 맹세를 하죠. 총회에서 무리한 결정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죠? 야베스 길르앗 거민을 죽이고, 처녀 4백 명을 잡아와서 베냐민 남자들에게 아내로 주었습니다. 그래도 200명이 부족하죠.
그러자 장로들이 꾀를 내었는데요. 실로에서 해마다 절기행사가 있었고, 장막절에는 여자들이 나와서 춤을 추었죠. 그때 베냐민 자손에게 포도원에 숨어 있다가 실로의 여자들이 춤을 추러 나오면 보쌈을 해다가 아내로 삼으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정당합니까? 너무나 세속적인 방법이죠.
한 번의 잘못이 또 다른 잘못으로 이어졌습니다. 실수를 했으면 시인하고 고치면 되는데 감추려고 하거나, 인간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하다보니까 실수에 또 다른 실수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이 그랬잖아요. 다윗이 어떤 실수를 하였습니까? 삼하11장에 그 내용이 기록되어있는데요.
첫째, 신하의 아내를 범하였습니다.
삼하11:2= “저녁때에 다윗이 그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지붕 위에서 거닐다가 그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
“저녁때에 다윗이 그 침상에서 일어나” 이 말은 낮잠을 자고 일어났다는 말이죠. 그런데 무슨 낮잠을 저녁때까지 잔단 말입니까? 물론 낮잠은 당시에 풍습이었죠. 더위를 피하여 낮잠을 잤습니다만 나라가 전쟁으로 비상시국인데 저녁때까지 낮잠을 잔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간음죄를 범하게 된 것입니다.
둘째, 죄를 은폐하려고 했습니다.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임신을 하자 다윗은 인간적인 꾀를 부리기 시작합니다. 전쟁터에 있던 우리아를 불러서 특별휴가를 줍니다.
삼하11:8= “저가 우리아에게 이르되 네 집으로 내려가서 발을 씻으라 하니 우리아가 왕궁에서 나가매 왕의 식물이 뒤따라 가니라.”
“발을 씻으라.”는 말은 히브리인의 관용적 표현으로 “휴식을 취하라.”는 말인데요. 빨리 집에 가서 씻고, 아내와 동침하라는 뜻입니다. “왕의 식물이 뒤따라 가니라.” 여기 “식물”은 “마사트”인데 선물을 의미하죠. 전쟁영웅에게 베푸는 예우로, 다윗의 기만행위죠.
삼하11:9= “그러나 우리아는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고 왕궁 문에서 그 주의 신복들로 더불어 잔지라.”
우리아는 집이 아니라, 왕궁에서 잤는데요. 학자들은 그 이유를 두 가지로 추측합니다. 첫째, 전쟁 중인데 어떻게 집에서 자겠느냐? 둘째, 아내와 다윗에 대한 소문을 들었을 것이다. 아무튼 우리아는 집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계획대로 되지 않자 다른 수작을 부리죠.
삼하11:13= “다윗이 저를 불러서 저로 그 앞에서 먹고 마시고 취하게 하니”
여러분, 이것이 잘하는 짓입니까? 아니죠. 잘못을 했으면 회개하고, 용서를 받아야죠. 그런데 다윗은 인간적인 잔머리를 굴렸습니다.
셋째, 우리아를 죽이도록 명령하였습니다.
요압에게 비밀지령을 내리죠.
삼하11:14= “아침이 되매 다윗이 편지를 써서 우리아의 손에 부쳐 요압에게 보내니”
삼하11:15= “그 편지에 써서 이르기를 우리아를 맹렬한 싸움에 앞세워 두고 너희는 뒤로 물러가서 저로 맞아 죽게 하라 하였더라.”
여러분, 죄는 또 다른 죄를 불러오는데요. 실수를 덮으려고 하면 또 다른 실수를 부르죠. 그러므로 작은 죄라도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옛날에 천하를 호령하던 군주들이 왜 망하였습니까? 더 강력한 상대를 만났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대개 여인들과 관련된 문제 때문이라고 합니다. 은나라의 “주”왕은 “달기”라는 여자에게 빠지고, 주나라의 “유”왕은 “포사”라는 여인에게 빠지고, 당나라 현종은 “양귀비”, 로마의 “안토니우스”는 “클레오파트라”로 인해 망했죠. 다윗도 “밧세바”로 인해 죄를 지었고, 솔로몬도 이방여자들 때문에 우상에 빠지게 되었죠. 삼손도 “들릴라” 때문에 망치지 않았습니까?
아무튼 죄의 결과는 아름답지 못합니다.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동족 간에 전쟁을 한 것도 그렇고, 베냐민지파를 향하여 한 행동도 그렇고, 죄는 죄를, 실수는 실수를 몰고 왔습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그렇게 되는 거죠. 하나님 앞에서 바로 사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