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11:1-11
오늘 본문에는 “입다”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기생의 아들로, 이복형제들에게 버림을 받았습니다. 형제들에게만 버림을 받은 것이 아니라, 부모에게도, 성읍장로들에게도 버림을 받았습니다. 7절을 보면 길르앗 장로들이 그를 미워하여 내쫒았습니다. 부모에게, 형제에게, 지역 어른들에게 버림을 받았죠.
이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머니가 기생으로 얼마나 많은 수치를 당했을까요? 이스라엘사회에서는 당연히 받을만한 수치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왕따를 당하고, 돕이라는 곳으로 쫓겨나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거기에서는 사람들이 따르기 시작하죠. 물론 좋은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
“수다한 잡류들이 그를 따랐다.”고 하는데요. “잡류”라는 것은 “할일이 없는 사람들”이란 말로 의역을 하면 “백수건달들”이란 말이죠. 입다는 이런 사람들을 데리고 게릴라부대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세력을 얻어 힘이 막강하게 되었죠. 홍길동이나 임꺽정과 같은 사람이 되었죠.
입다는 어려운 환경에서 강한 사람으로 성장했죠. 마치 요셉이 애굽에서 어려운 시절을 보냈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총리가 된 것처럼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사사가 되었죠. 그러므로 환경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사람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느 신발회사에서 두 사람을 아프리카로 시장조사를 보냈는데 한 사람은 “여기는 사람들이 신을 신지 않습니다. 신발이 필요가 없는 곳이므로 진출할 수 없습니다.”라고 보고를 했는데요. 그런데 다른 사람은 “여기 사람들에게는 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 모든 사람들에게 신발을 다 신기려면 엄청난 양이 필요합니다. 완전대박입니다.” 이렇게 보고를 하였습니다. 다른 것이 무엇입니까? 환경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른 거죠.
여러분, 어려움을 어려움으로만 보면 안 되죠. 시련이 있어도 믿음으로 보아야 합니다. 좋지 않은 환경이라도 믿음으로 보고, 믿음으로 이겨내면 축복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입다에게 또 아픈 일이 찾아왔습니다. 입다는 전쟁에 앞서서 하나님께 서원을 드립니다.
30= “전쟁에서 이기게 해주시면 돌아오는 길에 처음으로 환영을 나오는 사람을 바치겠습니다.”
그런데 누가 나왔습니까? 하나밖에 없는 딸이 나왔죠. 입다는 기생의 아들로 태어나서 한 맺힌 어린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러니 무남독녀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했겠어요? 그런데 딸을 번제로 드려야할 판입니다. 기절초풍할 일이죠. 딸을 보자 뭐라고 합니까?
35= “옷을 찢으며 가로되 슬프다, 내 딸이여! 너는 나로 참담케 하는 자요, 너는 나를 괴롭게 하는 자 중에 하나로다. 내가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하리라.”
그런데 여러분! 사람을 번제로 드리는 것이 옳은 일일까요? 여기에 대해 학자들은 두 가지로 말하는데요.
1> 딸을 번제로 드렸다는 주장입니다.
우리 개역성경은 이 해석을 따라 원문에도 없는 “죽었다”, “죽음”이라는 단어를 첨가하였습니다. 이 해석을 따르는 사람들의 입장입니다.
첫째, 번제는 불로 태워드리는 제사이기 때문에 입다가 “서원한 대로 딸에게 행하니”라고 했으므로 딸을 번제로 태웠다고 합니다.
둘째, 입다는 어머니가 이방여인이고, 기생이었고, 이방인들과 어울려 살았기 때문에 이방인들이 사람을 번제로 드리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합니다.
셋째, 12장에서 입다는 동족 42,000명도 죽였는데 자기 딸을 번제로 못 드리겠는가라고 합니다.
넷째, 이스라엘에도 사람을 번제로 드리는 악습이 있었고 그러기에 사사시대에도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사사시대에는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다고 하는데 이런 일이 왜 없었겠느냐?”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개역성경은 이런 해석을 따라서 “그 딸이 죽었다.”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2> 하나님께 평생을 헌신하게 했다고 합니다.
영어성경에서 NIV, NASB가 이런 해석을 따릅니다. 이유는 많죠.
첫째, 11:37-39절의 원문에는 “죽음”, “죽으니라”는 단어가 전혀 없는데 추가했다는 것입니다.
둘째, 37-39절은 딸의 처녀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결혼하지 하고, 평생을 처녀로 살았다는 거죠. 그래서 영어성경에서는 “never marry”, “virgin”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평생 결혼을 하지 않고, 처녀로 살았다는 거죠. 다시 말하면 기생의 아들로 태어나서 온갖 서러움을 받은 입다는 경솔한 서원 때문에 대까지 끊기는 아픔을 당한 것입니다.
셋째, 인간제물은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것인데 사사로 부름을 받은 사람이 사람을 번제로 드린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넷째, 만약에 그런 악을 행하였다면 히11장에서 입다를 믿음의 사람으로 소개했겠냐는 겁니다.
나름대로 일리가 다 있죠. 어쨌든 입다는 서원을 하고, 하나님의 도움으로 전쟁에서 승리하였습니다. 암울한 시대에 하나님께 쓰임을 받은 일군이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입다의 훌륭한 점은 무엇입니까?
첫째, 그는 훌륭한 조련사였습니다. 백수건달들을 좋은 군사로 만들었죠. 착한 사람들, 선량한 사람들을 훈련시키는데도 힘이 드는데 잡류들을 사람으로 만들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둘째, 그는 용서의 사람이었습니다. 장로들이 도와달라고 요청하였을 때 거절하지 않고, 복수하지 않고, 협력하고 목숨을 걸고 싸웠습니다.
셋째, 그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형제들에게, 부모에게, 지역사회에서 버림받았을 때 사회부적응자로 전락할 수도 있죠. 그러나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9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암몬을 나에게 붙여주시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면 믿음이 있는 사람이죠. 가족에게 버림을 받고, 타지에서 외롭게 살면서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고 살았는지도 모르죠.
넷째, 그는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11= “입다가 미스바에서 자기 일을 다 여호와께 고하니라.”
자기 마음대로 하지 않고, 하나님과 상의하고, 의논하였습니다.
다섯째, 그는 성령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29= “이에 여호와의 신이 입다에게 임하시니”
여섯째, 그는 서원을 실행한 사람이었습니다. 가슴을 찢는 아픔이 있어도 서원대로 실행하였죠. 열악한 환경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믿음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능력으로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외로움을 당할 때도, 풍랑을 만날 때도, 시련이 올 때도 하나님께서 도우실 것입니다. 이와 같이 입다처럼 승리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