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10, 2025

수5:1-9

1= “요단 서편의 아모리 사람의 모든 왕과 해변의 가나안 사람의 모든 왕이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말리시고 우리를 건네셨음을 듣고 마음이 녹았고, 이스라엘 자손들의 연고로 정신을 잃었더라.”

아모리 왕들과 가나안 왕들이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넜다는 소식을 듣고 정신을 잃었습니다. 수2:11절에도 같은 표현이 나오죠.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의 연고로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이럴 때 가나안을 정복해야죠. 그런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집니다.

2= “그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 하시매”

3= “여호수아가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할례 산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할례를 행하니라.”

지금은 할례를 행할 때가 아니죠. 사방의 적들이 이스라엘을 두려워하였고,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전쟁을 생각하고 있는데 할례를 행하고, 드러누우라는 것은 말이 안 되죠.

창34장을 보세요. 야곱의 아들 시므온과 레위가 세겜 사람들에게 “너희가 할례를 행하면 우리와 혼인할 수 있다.”고 하며 유혹을 하였죠. 그래서 세겜 사람들이 할례를 행하자 어떻게 되었습니까? 남자들이 다 누워있을 때 시므온과 레위가 쳐들어가 남자들을 다 죽였죠. 그러니 지금은 할례를 할 때가 아니죠. 그런데 하나님께서 명령하시고, 여호수아는 두말하지 않고 순종하죠. 백성들도 거부하지 않고 따랐습니다.

여기에서 무엇을 배워야 합니까?

1> 하나님과의 관계가 가장 우선이라는 것입니다.

가나안을 정복하는 전쟁도 중요하지만 하나님과의 관계정립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할례는 하나님의 언약백성이라는 표시로 중요하죠.

2= “그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 하시매”

“다시” 할례를 행하라는 말씀은 이미 출애굽 초기에 할례를 행하였지만 이번에는 두 번째로 할례를 행하라는 말씀이죠. 아무리 급한 전쟁이 있어도 하나님과의 관계정립이 더 중요하기에 전쟁에 앞서 할례를 먼저 행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생각할 때 전쟁을 앞두고 할례를 하면 어떻게 전쟁을 이길 수 있는가? 염려할 수 있죠. 그러나 전쟁은 누구에게 달려있습니까?

삼상17:47=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골리앗 앞에서 다윗이 한 말인데요. 골리앗은 2m 90cm가 넘는 거인이었죠. 갑옷의 무게만도 57kg나 나가는 천하장사였고, 골리앗의 창은 7kg가 넘는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비해 다윗은 소년이었습니다. 돌 다섯 개를 들고 나갔는데 싸움이 되겠습니까? 그러나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어서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붙여주시면 이기는 것입니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이 말 속에는 이 전쟁이 골리앗과 이스라엘의 싸움이 아니라 하나님과 골리앗의 싸움이라는 말이죠. 블레셋과 이스라엘의 싸움이라면 모르지만 블레셋과 하나님의 싸움이라면 이야기는 다르죠.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이라도 다윗이 이기는데 골리앗과 하나님의 싸움이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이기는 것입니다.

2>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의 남자들이 얼마나 될까요? 전쟁에 나갈 수 있는 장정들이 얼마나 되었습니까? 인구조사에 나타나지 않습니까?

민26:51= “이스라엘 자손의 계수함을 입은 자가 육십만 일천 칠백 삼십 명이었더라.”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행한 인구조사인데요. 남자 장정들이 601,730명입니다. 이 장정들이 할례를 받고, 길갈에 누워있습니다. 출애굽 1세들은 광야에서 다 죽었고, 이들은 2세들입니다. 다시 60만이 되었는데요. 구약학자 카일은 이때 할례를 받고 길갈에 누운 사람들은 약 70만 명 정도였을 것이라고 하는데요. 여리고 성에서 내려다볼 때 낮은 평원 길갈에 70만 장정들이 할례를 받고 몇 날을 누워있다고 생각해보세요. 이런 기회가 또 있겠어요? 절호의 찬스라고 생각하지 않겠어요?

한국축구의 특징이 뭐라고 하죠? 골대 앞에 가면 잘 넘어진다고 하잖아요. 골대 앞까지 들어갔으면 골을 넣어야지 그 앞에서 넘어지면 어떻게 이기겠어요? 여리고 코앞까지 가서 드러누우면 되겠어요? 그러나 전쟁의 승패는 누구에게 있다고 합니까? 하나님에게 있기 때문에 순종하여 할례를 행하였죠. 이런 행동은 인간적인 것, 세상적인 것을 포기하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교훈을 주는 거죠. 모르기는 해도 길갈 평지에 드러누워서 하늘을 쳐다보며 백성들은 하나님을 바라보았을 겁니다. 기도했겠죠. 이것이 승리의 비결이었습니다.

3> 순종이 최고의 미덕이라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지금은 때가 아닙니다. 사방의 적들이 단단히 경계를 하고 있는데 지금 우리가 할례를 받고 누우면 되겠습니까?” 이렇게 판단하고, 하나님의 명령과 여호수아의 말을 거부할 수도 있겠죠. 그러나 이렇게 하는 것은 신앙이 아니죠.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언제나 Yes를 해야죠. 이것이 신앙이고, 믿음이죠. 하나님은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순종하는 자가 이기는 것입니다.

여리고 앞에서, 전쟁을 코앞에 두고, 할례를 행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여호수아의 말에 순종하는 이스라엘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승리를 체험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