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20:1-9
수1-12장은 가나안을 정복하는 내용과 수13-19장은 땅을 분배하는 내용인데요. 오늘 수21장에는 도피성에 대한 말씀이 있습니다. 도피성에 대한 말씀은 민35장, 신19장에 나와 있죠. 일찍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도피성이 왜 필요했을까요?
3= “부지중 오살한 자를 그리로 도망하게 하라. 이는 너희 중 피의 보수자를 피할 곳이니라.”
부지중에 오살한 자를 피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하죠. “부지중”이라는 말은 “과실로”, “실수로”, “알지 못한 채”라는 뜻입니다. 원한이 없이, 우연히, 기회를 엿보지 않고, 무엇을 잘못 던져 사람을 죽게 했을 경우죠.
창9:6=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
출21:23-25=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데운 것은 데움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지니라.”
그러나 실수로 사람을 죽게 했으면 도피성으로 피하여 목숨을 부지하라고 하시죠. 이 도피성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도피성은 어떻게 운영해야 합니까?
4= “그 성읍들의 하나에 도피하는 자는 그 성읍에 들어가는 문 어귀에 서서 그 성읍 장로들의 귀에 자기의 사고를 고할 것이요, 그들은 그를 받아 성읍에 들여 한 곳을 주어 자기들 중에 거하게 하고”
몇 가지 절차가 있습니다. 첫째, 도피성의 장로들에게 사고원인을 보고하고, 둘째, 도피성의 장로들이 사건을 바로 심사하고, 셋째, 보수자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해야 하고, 넷째, 보수자가 재판을 청구하면 재판을 열고, 다섯째, 대제사장이 죽으면 완전한 해방을 얻습니다. 대제사장의 죽음은 예수님의 속죄를 상징하고, 예수님의 속죄 외에는 구원의 길이 없다는 겁니다.
그리고 도피성은 어디에 세우라고 하였습니까? 7-9절에서 말씀하죠. 요단 동편과 서편에 각각 세 개씩 세우라고 하죠. 이미 모세가 요단 동편에 세 개를 세웠고, 이제 여호수아가 요단 서편에 세 개를 세웠죠. 모두 6개였습니다.
도피성제도를 보면서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1> 생명의 신성함을 알아야 합니다.
고의가 아니라 과실치사일 경우 그 사람의 목숨을 살려주라는 것입니다. 고의로 살인을 했으면 생명으로 갚지만 고의가 아닌 경우에는 살려주라는 건데요. 역시 생명의 귀중함 때문이죠.
2> 영원한 도피성은 예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죄인들의 도피성은 바로 예수님이죠. 예수님 안에 죄용서와 영생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약의 도피성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는 지역의 중앙에 세우고, 항상 길을 확 트이게 닦아놓고, 이정표를 세워두어 누구나 위급할 때 길을 잘 찾도록 해야 합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믿는 길도 항상 열려있죠. 어떠한 죄인이라도 믿으면 구원을 얻습니다. 도피성 안에 들어가면 생명을 보장받는 것처럼 예수님 안에 영생이 있습니다. 구원을 받습니다. 한편 예수님을 믿는 길 외에는 구원의 길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도피성은 예수님뿐입니다. 예수님 안에만 구원이 있습니다.
요14:6=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3:36=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우리를 자유케 하는 분은 예수님뿐입니다. 다른 데에서 자유를 얻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진리 안에 있을 때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것입니다. 진리를 떠나고 예수님을 떠나서는 구원이 없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도피성은 오직 예수님이죠. 예수님 안에 있을 때 자유와 구원을 얻습니다.
소련의 독재자였던 스탈린의 딸이 1967년에 미국으로 망명을 하였습니다. 그녀가 망명한 이유는 신앙의 자유를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녀가 예수님을 믿고, 개종을 한 후에 “사람은 하나님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상이 다르다는 이유로 죽이는 것은 죄악이고, 사람은 누구나 국가의 소유물이 아니라, 누구나 존중을 받아야 하고, 자유롭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이런 믿음을 지키려고 망명을 하게 된 것입니다.
한국을 보면 언젠가 한때 적폐청산을 한다는 명목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감옥으로 보내었습니다. 적폐청산이 옳은지는 몰라도 그 사람들이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만 못하겠습니까? 수백만 명을 굶어죽게 하고, 감옥에 넣고, 자기들의 눈에 조금만 달라도 공개처형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안하면서 내 나라의 사람들에게는 무자비하게 탈탈 털었습니다. 도피성이 한국에도 있어야할 것 같습니다. 죄와 잘못을 무조건 덮어주라는 말이 아니죠. 참작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튼 당시에 도피성이 없었으면 고의로 잘못을 했던, 실수로 잘못을 했던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도피성은 필요했죠. 오늘 우리도 감사하는 것은 우리에게도 도피성이 되시는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산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자유가 주어졌고, 예수님 안에서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예수님 안에서 자유를 누리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