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9:50-57
기드온은 인생후기가 좋지 않았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사람들이 겁을 먹는 권력을 가지고 마음에 드는 여성을 수도 없이 아내로 맞이하였고, 하고 싶은 일은 아무 일이나 할 수 있었습니다. 많은 아내들을 통하여 아들만 70명을 낳았고, 첩까지 두었는데 첩도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왜 기드온이 그렇게 살도록 내버려두셨을까요?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렇게 사는 것은 복이 아니라, 저주라는 것입니다. 삿9장이 그것을 증명하죠. 기드온이 첩에게서 얻은 아들 아비멜렉이 형제 70명을 죽이잖아요. 좋지 않은 자식이죠.
아비멜렉의 이름의 뜻을 보면 “아비”는 “나의 아버지”라는 뜻이고, “멜렉”은 ‘왕’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아비멜렉”의 이름의 뜻은 “나의 아버지는 왕이시다.”라는 뜻입니다. 기드온이 왕이 되어달라는 요청은 거절했지만 고향에 돌아가서 살면서 마음에 미련이 있었든지 아들에게 “나의 아버지는 왕이시다.”라는 이름을 지어주죠. 속으로는 그런 마음을 품은 듯합니다. “아들아, 네 아버지가 누군 줄 아느냐? 네 아버지는 이 나라의 왕이란다.” 이런 마음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임씨 성을 가진 분이 아들을 낳고, 이름을 “금님”이라고 지었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아들의 이름이 “임금님”이었습니다. 학교에 가서 얼마나 놀림을 받겠어요? 다행히 미국에 이민을 와서 “금님림” 하니까 모르지만 한국에서는 그 이름으로 살기가 거북하죠. 그런데 옛날 왕조시대에 그런 이름을 지었다면 귀양을 가기에 딱 좋은 이름이죠. 반역자로 낙인이 찍히겠죠.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아비멜렉은 “나의 아버지는 왕이시다.”라는 이름을 갖고, 첩의 아들로 개망나니처럼 살았습니다. 비자금을 만들어 불량배들을 돈으로 사고, 아버지의 아들들을 모두 살해합니다. 왕자의 난을 일으켰죠. 그리고 3년간 왕이 됩니다. 그렇게 왕이 되어서 왕 노릇을 제대로 하겠어요? “제 버릇 개 못준다.”고 백성을 착취하다가 권력을 잡은 지 3년 만에 비참하게 망하였습니다.
그가 어떻게 죽습니까? 아낙네가 던진 맷돌에 맞아 머리가 깨집니다. 그래도 자존심은 있어서 여인에게 맞아죽었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아서 부하에게 자기를 찌르라고 하죠. 이런 것을 보면 기드온은 자식농사를 잘못 지었습니다.
삿8:20= “그 장자 여델에게 이르되 일어나 그들을 죽이라 하였으나 그 소년이 칼을 빼지 못하였으니 이는 아직 어려서 두려워함이었더라.”
기드온이 실수를 하죠. 기드온이 얼마나 부주의하였습니까? 어린 아들에게 칼을 주고, 미디안의 왕을 찔러 죽이라고 합니다. 물론 강인한 왕자로 키우려는 의도는 알겠지만 어린 아들 입장에서는 얼마나 충격이겠어요? 아비멜렉이 형제 70명을 죽인 폭행도 어쩌면 기드온이 물려준 정신적인 유산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녀들에게 물질보다는 신앙을 잘 물려주어야 할 것입니다. 신앙의 인격자로 키워야 가정이 바로 서는 것입니다.
시카고대학교에서 가르치는 한국인 교수가 동양계 이민자들의 2세와 3세에 대하여 조사를 했는데요. 한국인 2세들은 다른 동양계이민자들보다 우수한데, 3세 한국인들은 다른 동양계3세에 비해서 약간 떨어진다고 합니다. 고등학교 중퇴율, 알코올, 마약에 빠지는 비율이 한국인 3세들에게 더 많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Ivy League 대학교에 진학하는 비율도 2세들에 비해 3세들은 떨어진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이민1세들은 어떻게 하든지 애들이 고생을 안 하게 하려고 열심히 가르치죠. 그래서 2세들이 좋은 학교, 좋은 직업을 가지는데 다음 세대들은 부모덕에 풍요롭게 살면서 가치관이 달라지거든요. 그래서 공부를 열심히 안한다는 거죠.
그러나 중요한 것은 후손들을 신앙으로 키워야 하는 것입니다. 기드온처럼 자식농사를 잘못 지으면 이렇게 가문이 패가망신하는 거죠. 물론 자식농사가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죠. 자식 문제만큼은 큰소리칠 사람이 없다고 하죠. 자식의 미래를 장담할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어쨌든 신앙의 유산만은 후손들에게 잘 물려주어야 합니다. 기드온처럼 권력, 돈, 쾌락, 이런 것을 물려주었을 때 자녀들이 잘 되었습니까? 잘된 것이 없죠. 첩의 아들이 형제 70명을 죽이고, 자신과 자녀들도 비극적으로 생을 마쳤습니다. 하나님은 행한 대로 갚으십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행한 대로 보응을 받습니다.
56= “아비멜렉이 그 형제 칠십 인을 죽여 자기 아비에게 행한 악을 하나님이 이같이 갚으셨고”
57= “또 세겜 사람들의 모든 악을 하나님이 그들의 머리에 갚으셨으니 여룹바알의 아들 요담의 저주가 그들에게 응하니라.”
악을 누가 갚아요? 하나님께서 갚으신다고 하죠. “하나님이 이같이 갚으셨고”, “하나님이 그들의 머리에 갚으셨으니”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자신도 바르게 살아야 하고, 자녀들도 바르게 살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자녀가 집을 나설 때 한국의 부모들은 “누구한테도 지면 안 돼!”라고 말하고, 일본의 부모들은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고 하고, 미국의 부모들은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라.”고 한다고 하죠.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바르게 가르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어려서부터 “내가 없는 하나님은 있어도 하나님이 없는 나는 없다. 나는 하나님의 도구이다.”라고 배운다고 합니다. 그러니 얼마나 잘 자라겠습니까? 후손들에게 바른 신앙교육과 신앙의 유산을 물려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