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24:14-18
수23장에서는 말씀을 크게 힘써 행하고, 우상을 섬기지 말고, 하나님을 친근히 하고, 사랑하라는 유언을 했는데 수24장에서는 하나님만 섬기라는 말씀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유언인데요.
14=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성실과 진정으로 그를 섬길 것이라. 너희의 열조가 강 저편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15=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여호와만을 섬기라고 하면서 자신도 여호와만 섬기겠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도 “오직 여호와만 섬기라.”는 말씀을 삶의 모토로 삼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돈을 버는 것도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가족이 잘되는 것도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즐거움을 누리는 것도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모든 것이 이렇게 되어야 잘 믿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중심주제가 바뀌어야죠. 우리 안에 주인이 둘일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섬길 수는 없고, 하나님이든, 세상이든 양자택일을 해야 합니다.
15=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하나님을 섬기기로 결단하라는 말이죠. 아무 신이든지 섬기면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하나님만 섬겨야 할까요? 하나님만을 섬겨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2= “내가 너희 조상 아브라함을 강 저편에서 이끌어내어 가나안으로 인도하여 온 땅을 두루 행하게 하고, 그 씨를 번성케 하려고 그에게 이삭을 주었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신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선택이었습니다. 선택하시고, 불러내어서 선민을 삼아주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죠. 하나님의 은혜로 부름을 받아서 믿고,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선택을 받을 만한 무엇이 있어서 선택함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전적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죠. 감사할 뿐입니다.
2>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40년 동안 광야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오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적들을 이기게 하셨죠.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을 회상하면서 이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만을 섬기라고 하는 겁니다.
발명왕 에디슨도 이런 믿음으로 살았다고 하는데요. “밀러”라는 분이 “인류에 은혜를 끼친 토마스 에디슨”이란 책을 썼는데 그 책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만약 에디슨에게 하나님의 계시가 없었다면, 그에게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주고, 그 길을 인도해주는 힘이 없었다면 그는 결코 과학과 수학의 분야에서 그렇게 정밀한 두뇌를 소유할 수가 없었을 것이며 우주의 오묘한 비밀을 깨닫지도 못했을 것이다.”
에디슨은 자신의 실험실에 이런 좌우명을 걸어놓았다고 하는데요. “나는 전지전능하시고, 만유에 충만하시며 높고 지존하신 그 분,하나님의 존재를 굳게 믿는다.” 믿음으로 산 사람이죠. 우리도 이렇게 살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어떻게 섬겨야 할까요?
1> 성실함으로 섬겨야 합니다.
14=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성실과 진정으로 그를 섬길 것이라. 너희의 열조가 강 저편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성실과 진정으로 그를 섬길 것이라.” 형식적으로 섬기지 말고, 마음을 다하여 섬기라는 말씀이죠. 여기에 ‘성실’(sincere)이라는 말은 라틴어로 ‘없는’(sine)와 ‘밀랍’(cere)라는 단어의 합성어죠. ‘밀랍이 없는’이란 뜻입니다. “밀랍-beeswax”이라는 말은 일벌들이 분비하는 노란색 천연왁스죠. 접착제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옛날 로마사람들은 대리석으로 조각품을 만들 때 실수로 코끝이 떨어져나가면 버리기가 아까우니까 대리석조각을 갈아서 가루로 만들고, 그것을 밀랍에 반죽하여 떨어져나간 곳에 살짝 붙여서 팔았습니다. 그런데 날씨가 더워지면 콧잔등이 녹아서 떨어지죠. 눈가림을 한 것입니다. 정직하지 못한 거죠. 그런 의미에서 성실하다는 것은 눈가림이나, 속임수가 없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 된 것입니다. 우리도 성실함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2> 우상숭배를 하지 않아야 합니다.
14= “너희의 열조가 강 저편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3> 일편단심으로 섬기라고 합니다.
15=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18= “우리도 여호와를 섬기리니 그는 우리 하나님이심이니다.”
21= “우리가 정녕 여호와만 섬기겠나이다.”
24=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우리가 섬기고 그 목소리를 우리가 청종하리이다 한지라.”
일편단심으로 섬기겠다고 하죠. 이것이 여호수아가 바라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모습입니다. 우리도 이런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찬470장을 쓴 “스파포드”라는 분이 있는데요. 그는 변호사로 법리학 교수였고, 시카고 무디교회의 회계집사였습니다. 시카고 대화재 때에 큰 손해를 보았고, 아내가 병이 들자 의사의 환경을 바꾸어보라는 권면을 받고, 프랑스로 여행을 가게 되었습니다. 마침 교회가 불에 타서 건축문제로 딸들과 아내만 보내고, 자신은 나중에 합류하기로 했는데 아내와 딸들이 탄 여객선이 영국의 철갑선과 대서양에서 충돌하여 침몰하였습니다. 그 사건으로 딸들은 죽고, 부인만 구조되었는데요. 소식을 들은 스파포드는 아내를 데리러 가기 위하여 대서양을 건너게 되었는데 두 딸이 죽은 바다 위를 지나게 되자 그는 선실로 들어가 밤이 새도록 몸부림을 치며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런데 새벽 세시쯤에 그의 마음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딸들이 비록 어려서 죽었지만 그들은 천국에 갔을 것이고,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는 확신이 마음에 찾아온 것입니다. 그리고 아내가 아직 살아있다는 사실도 하나님의 축복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슬픔을 딛고, 감사하게 되었는데요. 딸들을 잃었으니 얼마나 기가 막히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기가 막히는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은혜와 평안을 주셨습니다.
그때 지은 찬송시가 바로 470장입니다.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저 마귀는 우리를 삼키려고 입 벌리고 달려와도 주 예수는 우리의 대장되니 끝내 싸워서 이기겠네.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이런 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평강이죠. 우리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평강으로 날마다 승리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