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ember 31, 2024

신33:26-29

“파랑새”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한 소년이 파랑새를 보고 잡으려고 하는데 아무리 쫓고, 쫓아도 새를 잡을 수가 없습니다. 파랑새를 쫓다보니 어느덧 노인이 되었는데 결국 잡지도 못하고, 지쳐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파랑새가 집에 있었습니다. 쓸데없이 밖으로 돌아다녔죠.

여기서 파랑새는 무엇을 상징할까요? 행복을 가리키는 겁니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거죠. 행복이라는 것은 외적인 것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이 환경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행복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모세의 마지막 예언이자, 유언인데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행복자라고 합니다. 왜 이스라엘이 행복자일까요?

1>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26= “여수룬이여, 하나님 같은 자 없도다. 그가 너를 도우시려고 하늘을 타시고 궁창에서 위엄을 나타내시는도다.”

여기 “여수룬”은 “의로운 백성”이란 말로 이스라엘을 뜻하는데요. 하나님의 선택으로 언약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복입니까?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요, 천국백성이 되었습니다. 이런 복에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도우려고 하늘을 타시고, 궁창에서 위엄을 나타내셨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을 표현한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시니까 우리는 행복한 사람이죠.

3> 하나님이 우리의 처소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27= “하나님이 너의 처소가 되시니 그 영원한 팔이 네 아래 있도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안식할 곳이 없이 유리하고 방황했지만 하나님께서 안식과 피난처가 되어주셨다는 것입니다. “그 영원한 팔이 네 아래 있도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받쳐주신다는 말이죠. 하나님께서 안아주시고, 보호하신다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께서 능하신 팔로 우리를 받쳐주시니 행복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의 도움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행복한 겁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의지하거나 도울 자가 없어도 하나님의 손길을 믿고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4> 하나님의 구원 때문입니다.

29=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여러분, 우리가 구원을 받은 축복이 세상에서 제일 큰 것입니다. 이것보다 더 큰 축복은 없죠. 그래서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구나!” 이렇게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어느 날 스펄전 목사님이 울고 있습니다. 사모님이 “왜 우느냐?”고 물었을 때 대답하기를 “오늘은 십자가를 생각하는데 감동이 없어서 울고 있다.”고 하였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미국에서 “가난한 집과 부자 집”을 비교한 드라마가 방영된 적이 있습니다. 부자 집에서는 고등학생 자녀에게 자동차를 사주었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집은 아들에게 앵무새 한 마리를 사주었습니다. 그러면 누가 행복할까요? 그런데 자동차를 받은 부잣집 아들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으며 부자 집 아들은 날마다 가난한 친구 집을 찾아갑니다. 이유는 앵무새를 보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사실은 친구의 행복한 가정 분위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 행복은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행복은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가정이 행복한 겁니다.

어느 마을에 산에서 나무를 해다가 겨우 살아가는 가난한 나이 많은 할아버지가 한 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믿음이 좋았습니다. 혼자 살면서도 신앙생활에 힘쓰고, 입에서는 찬송이 떠나는 날이 없었습니다. 산에 가서 나무를 해가지고 내려올 때에는 언제나 교회 앞에 나뭇짐을 세워놓고, 예배당에 들어가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기도를 드린 다음에 기쁜 얼굴로 나오곤 했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목사님이 하루는 그 할아버지한테 물어보았습니다. “무슨 소원이 많아서 매일 그렇게 기도하세요?” 그 때 할아버지가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무엇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다지 필요한 것도 없습니다. 저는 다만 이 성전에 나와서 하나님을 바라볼 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도 저를 내려다보시죠. 이렇게 하나님과 마주보는 것이 저의 행복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다는 이것을 우리는 진정한 행복으로 여기고 있습니까? 믿고, 기도할 수 있는 것은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간혹 얼굴이 못생긴 사람이 자신이 못생긴 것은 부모 탓이라며 불평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얼굴모양이나 눈, 코, 입이 못생겼다고 하더라도 마음에 무엇을 담고 있느냐에 따라 사람의 표정은 아름답게 변할 수 있기 때문이죠.

미얀마 선교사 가운데 “저드슨”이라는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이 분은 정말 못생긴 사람이었다고 하는데요. 사람들에게 “기쁨의 얼굴”이란 별명을 얻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믿고, 행복하게 사니까 얼굴은 못생겨도 표정이 밝았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까? 기쁨의 얼굴을 소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쁨을 소유한 얼굴은 아름다운 얼굴입니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오늘 우리도 이런 축복을 받은 사람들로서 감사하며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